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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

꼬꼬무, 전태일 열사의 마지막 피로 쓴 약속

by 쁘리v 2021. 12.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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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꼬무에서 전태일 열사의 마지막 피로 쓴 약속의 그날 사건에 대해서 다뤘다. 1970년 11월에 발생한 일이다. 전태일의 마지막 길에 어머니에게 전태일은 어머니 전 이제 곧 죽을 겁니다 라며 약속을 하나 꼭 지켜달라며 마지막 약속을 했다.

 

전태일의 친구 김영문 이승철 최종인 동대문 평화시장의 재단사 이 세 사람이 등장하게 된다. 전태일은 친구들에게 평화시장을 바꿔보자고 열악한 노동환경을 세상에 알렸다. 세 친구들의 전태일을 만나고 인생이 바뀌었다. 전태일은 리더십 있는 열사였다. 1970년 당시에 ㅅ평화시장 건물 안에 봉제 공장은 400여 개에 달했다. 만 명이 넘는 노동자가 일을 하는데 환풍기는 하나도 없고 좁은 공간에 노동자 30명이 함께 일을 했고 일주일에 100시간을 근무하고 쉬는 날도 한 달에 하루 이틀이 전부였다. 전태일은 힘든 유년기를 보냈었다. 무허가 판잣집에서 가족들과 살았다. 전태일은 평화시장에서 재단사가 되었고 평화시장 안에서 근무환경이 너무 좋지 못해 폐질환을 앓고 해고당하고 그것을 아프면서도 숨기는 동료들, 그리고 동료들의 이름도 모르고 죽었는지 살았는지도 모르고 자신 앞길이 바쁜 노동자들의 생활을 지켜보다 고민을 하게 된다. 

 

전태일은 근로기준법의 해설서를 발견하게 되고 초등학교밖에 졸업하지 못했지만 밤새 옥편 찾아가며 정독을 하게 된다. 근로기준법에서 발견한 내용은 근로시간은 8시간 휴게시간은 1시간 일주일에 48시간으로 기준으로 하고 근로자에게 일주일 1회 유급휴가를 주어야 하고 13-15세 근로시간은 1일 7시간 일주일에 42시간을 초과하지 못한다는 애용이다. 법으로 제정되어있는 것은 가지고 진정서를 만들어 노동청에 가지만 아무 소득이 없이 돌아온다. 그사이 전태일은 평화시장에서 블랙리스트가 되고 선동한다며 취업이 어려워지게 된다. 노동청 앞에 기자들에게 침상을 보도해 달라고 제보하고 기사화되어 세상에 알려진다. 하지만 달라지는 게 없었다. 노동청은 전태일과 친구들에게 국정감사기간 동안 문제를 일으키지 않기 위해 시간을 끌었었고 요구조건은 실현 불가능이라며 태도를 달리하게 된다. 

 

근로기준법이 지켜지지 않고 의미 없는 법을 화형식 하기로 마음먹고 해설서를 태우기로 했지만 형사에게 빼앗기어 시위를 못하게 되자 전태일이 자신의 몸에 불을 붙이게 된다. 자신의 몸이 불타는데도 근로기준법 해설서를 품에서 꺼내며 외쳤다 근로기준법을 준수해라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 일요일은 쉬게 하라 라고 소리쳤다. 전태일은 온몸이 알아볼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고 친구들은 전태일의 말을 혈서로 옮겨 적었다. 병원에서의 마지막 순간에 전태일은 어머니에게 캄캄한 암흑세계에서 이렇게 살 수 없다며 본인이 목숨 바쳐 창구멍 하나 내었으니 어머니도 같이 앞장서서 소리 질러주라며 약속의 확답을 받게 된다. 

 

23살이었던 전태일의 죽음이 대한민국을 바꾸게 했다. 노동현실을 바꾸기 위해 대학생들의 시위가 번졌고 노동청은 전태일 어머니에게 돈으로 회유했지만 어머니는 거부했고 전태일 사망 14일 후에 평화시장 옥상에 노동조합이 들어서고 노동환경개선을 위해 10년간 노력했다. 전태일의 어머니는 평생 아들과 약속을 지키다 2011년에 목숨을 거뒀고 전태일 열사의 친구들은 일흔이 넘었는데도 전태일의 가슴에 품으며 전태일에게 고마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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